정서학대, 아이의 영혼을 갉아 먹습니다
등록일 2017-01-09
[정서학대, 혹시 나도?] 정서학대, 아이의 영혼을 갉아 먹습니다
"학대하지 않는 것이 자녀를 생존하게 하는 길"
최근 검찰은 아동을 숨지게 한 아동학대범에 대해 최고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보다 엄격한 범죄 처벌 기준을 내놨다. 아동학대에 관한 사회의식, 엄벌 요구가 고조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아직까지 폭력 및 성폭력, 방임 등 물리적·신체적 학대에 대한 처벌에 편중돼 있다. 정서적 학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처벌 기준이 미흡할뿐더러, 있다 해도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한 실정. 정서 및 심리학대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결과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차마 의식하지 못한 채 남용되는 정서학대가 만연하게 퍼져있다. 정서학대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 인식의 부재 등 정서학대를 심각한 학대의 유형으로 인지 못 하는 부모가 적지 않은 것.
부모들이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현실과 정서학대의 유형, 그에 따라 아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징후를 짚어보고, 정서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국가, 단체, 부모가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본다.
<기사 싣는 순서>
① 당신도 '학대부모'일 수 있습니다
② 무심코 하는 당신의 행동, 보이지 않는 아동학대
③ [카드뉴스] 옆집 아이와 우리 아이, 비교해본 적 없나요?
④ "정서학대, 아이의 영혼을 갉아 먹습니다
⑤ 정서학대 처벌? "촘촘한 법과 제도 필요"
한 번 구겨진 종이는 원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 어릴 적 받았던 학대도 마찬가지. 마음속 깊은 상처로 남아 회복이 쉽지 않다. 특히 정서학대는 신체학대와 달리 상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발견하기가 어렵고 치료 역시 보다 더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정서학대는 아이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징후를 파생하는 것일까?
지난달 1일 서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KAVA)을 지휘하고 있는 신의진 회장을 만나 정서학대가 아이에게 끼치는 위험성부터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부모가 가져야 할 자세까지 정서학대에 관한 얘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동학대 사례로 상담 중인 한 아이의 그림. 이기태 기자 ⓒ 베이비뉴스
Q. 아직 우리 사회는 정서학대에 대해 그리 민감하지 못하다. 중앙아동보호기관 등이 정서학대의 구체적인 행위들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정서학대와 훈육과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경계 기준을 어떻게 봐야 하나.
A.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아직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정서학대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없다. 조사와 연구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을 뿐더러 정서학대의 흔한 형태가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그런데 학대를 예방하겠다고 '정서적' 학대 범위만 잔뜩 넓혀 놓고 부모들에게 "이것도 저것도 하지 마라"고 충고한다.
이같이 연구도 제대로 되지 않은 너무 넓은 범위의 정서학대는 많은 부모를 죄책감에 들게 만들 수밖에 없다. 훈육이라 생각하고 아이에게 한 번쯤 했던 행위들이 정서학대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 많은 부모들이 정상적인 패어런팅(parenting)에 대한 혼란이 오는 이유다.
정서학대는 질(quality)과 용량(dosage)을 따져야 한다. 아이에게 다른 아이를 때리도록 강요한다든지 아이를 유흥업소에 데리고 가거나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행위 등은 질적(quality)으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명백한 정서학대다.
반면 "넌 왜 이 모양이야!", "너 때문에 못 살아!" 등 적대적 언어폭력의 경우, 한두 번은 훈육으로 허용될 수도 있겠지만 계속 반복되면 용량(dosage) 초과로 정서학대가 된다. 이렇듯 우리는 무작정 정서학대 범위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모아 질과 용량을 따져 정서학대의 정의, 범주를 정확히 필요가 있다.
Q. 아직 정서학대에 대한 기준이 분명치 않지만, 학계에서는 어느 정도 정서학대의 데이터를 모으고 유형, 범주 등을 분석하고 있을 것 같다.
A. 학술적으로 정서학대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공포감, 불안감을 조성해 아이의 '정서조절력'(emotion regulation)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예를 들어 도깨비가 나오는 무서운 영상을 보여준다든지 귀신이 나온다는 장난으로 아이를 놀라게 해 극심한 정서적 고통을 주는 것이다. 한 번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정서학대가 될 수 없지만 놀라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 때는 분명 문제가 된다.
두 번째는 아이의 자아상(Self-Image)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행위다. "너 나가 죽어", "너 때문에 내가 망했어", "너는 어떻게 해도 소용없어", "왜 이 지경이니?"와 같은 언어폭력 등으로 긍정적 자아상을 만들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는 건전한 가치(Value) 형성을 깨뜨리는 행위다.
이를테면, 성인이 아동에게 마약을 주거나 물건을 훔쳐오라고 시키는 등의 행위가 해당된다. 또 교사가 반장에게 숙제를 해오지 않은 다른 학생들을, 아빠가 막내에게 오빠를 매로 때려라고 명령하는 것 등이다. 이 같은 행위는 올바른 도덕 가치관 성립을 방해한다.
네 번째는 노동(labor)을 강요하는 행위다. 특히 한국에서는 심한 조기교육, 아동의 무리한 연예 활동 등이 해당된다.
밤늦게까지 아이를 재우지 않고 숙제를 마치도록 강요하거나 학교를 결석시키면서까지 아이를 아역배우로서 연예 활동을 강행하게 하는 행위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또 두 돌배기 아이에게 매일 방 청소를 하라고 시키는 행위 등도 이 유형에 속한다.
단, 아까 설명했듯이 정서학대는 질과 용량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마약을 주거나 담배를 피게 만드는 등의 행위는 단 한 번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정서학대이지만, 아이에게 하루쯤 설거지를 시키거나 방청소를 시키는 등의 행위는 정서학대로 볼 수 없다. 이 같은 행위가 오랫동안 지속될 때 용량 초과로 정서학대에 해당된다.
이렇듯 정서학대는 약속된 틀을 가지고 분석·연구하고 부모들에게 일러줘야 할 분야다.
Q. 정서학대가 신체학대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 이유는 무엇인가.
A. 한 인간의 인격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정서학대는 인간의 건전한 자아와 정신을 완전히 갉아먹는다. 몸의 상처는 아프면 그만이지만 마음에 남는 상처는 아이의 영혼을 죽여버린다.
사람 구실을 못 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몸이 불구라서 못 할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마음이 불구면 못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또 정서학대로 받은 마음의 상처는 치료한다고 해도 신체학대로 인한 외상보다 훨씬 치료하기 어렵고 상처가 오래간다. 몸의 상처는 치료가 제대로 됐는지 눈에 보이지만 마음속 상처는 어느 정도 치료가 됐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조차 없다.
Q. 정서학대로 인한 상처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A. 앞서 말한 네 가지 정서학대 유형에 따른 부작용을 차례대로 설명하자면, 먼저 정서조절력이 떨어지면 불안장애, 우울장애, PTS(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이 올 수 있다. 자아상이 부정적으로 형성되면 성격장애가 오는 것은 물론 자동인형이 될 우려가 있다. 자신의 견해나 관점 없이 남이 시키는대로만 행동하는 것이다.
건전한 가치 형성이 깨지면 범법자가 되기 쉽고, 노동을 강요받으면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내가 담당했던 환자 중에 책을 정말 많이 읽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실제 아이큐는 60대.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과도한 교육으로 아이는 상상력이 떨어지고 사고력이 정지된 케이스다.
만일 네 가지 유형의 정서학대를 모두 받았다면 아이는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가득 찬다. 최초로 믿고 의지하고 가장 보호받아야 할 대상 '부모'에게서 안정감, 믿음을 얻지 못했으니 '저 사람이 나를 배신하면 어떡하나'와 같은 타인에 대한 불신이 쌓인다. 사람을 믿는 것조차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Q. 그렇다면 정서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A. 가장 먼저 한국에서 발생하는 흔한 형태의 정서학대 유형을 연구하고 이를 체계화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이것조차 안 돼 있다. 연구할 수 있는 기관도 예산도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GDP가 3배인데, 아동학대 예산은 무려 72배에 달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빠른 시일 내에 정서학대에 관한 연구가 이뤄져 부모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해졌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많은 부모를 죄책감에 들게 하는 애매모호한 규정은 결코 학대 예방이 될 수 없다.
Q. 제도와 함께 부모의 자세도 중요할 것 같다.
A. '그래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자녀를 스트레스에 취약한 아이로 만든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폭력을 당했을 때 영리하게 잘 저항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바로 무너지는 아이들이 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처참히 무너지는 이유는 대부분 어렸을 때 당한 정서학대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정서학대는 지금 당장 징후를 파생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아이를 무너지게 만드는 초석이 된다.
때문에 학대를 하지 않는 것은 필요충분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자녀를 힘든 세상에서 잘 살아가게 하려면 학대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이상 어떻게 더 절실하게 말하겠는가.
출처 : 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